작성일 : 13-01-09 10:42
글쓴이 : 빤냐완따
(지난 가을, 경주 현곡면 구지산자락의 폐사지 '남사'.
고색찬연한 3층석탑 하나가 단풍속에 파묻혀 있었다.
남사리 석탑 지나자 마자 저만치 현불사가 보인다.
공양간엔 객승을 위해 따순밥 짓던
인제는 가고 없는 8순의 노보살님. 아래 글은 까페 '경주현불사'에서 )
현불사의 영원한 소녀 허보살님이 어제 저녁에 육신을 떠났습니다.
평생 절에서 부처님 공경하고 기도와 수행으로 한결 같았기에
마지막 모습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였는데 역시
보통 사람들 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잠깐 법문을 하니 말은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다만, 두 눈에 눈물 방울이 맺히더니 제가 떠난 뒤에 다음 생을 찾아 떠났습니다.
며칠 전에 찾아 갔을 때는 몸은 야위었지만 정신은 너무나 또렸하여
"자장면을 먹었으면 좋겠다."
"스님 공양 반찬은 무엇으로 드시냐 "등
선원 주변 지인들의 안부까지 일일이 물었습니다.
기회다 싶어 평생 공부한 숙제 검사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몇 가지를 질문 하였습니다.
스 님: 보살님 아쉬운 것은 없습니까?
허보살: 여한이 없어요.
스 님: 마음 속에 응어리는 없습니까?
허보살: 모두 놓아 버렸습니다.
스 님: 몸에 집착이 되지 않습니까?
허보살: 집착하지 않습니다.
스 님: (웃으면서) 가시면 잔치를 할까요? 천도재(49재)를 할까요?
허보살: (눈을 찡긋하면서) 천 도 재 ....(평소 천도재 지내는 것을 취미로 한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후회, 애착 그리고,
다음 생에 대한 불안,육신의 고통으로 아름답지 만은 않은 죽음을 맞이 합니다.하지만,
허보살님처럼 마지막을 아름답게 받아 들이는 분은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별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허전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먼저 가서 멋진 곳에 좋은 터 잡아 놓기를 바랍니다.그리고, 다시 또 만납시다.
추신:
형식은 천도재(49재)로 하되 내용은 잔치로 하겠음.덧붙여 말하자면,
이 육신을 가지고 나다 너다 구분하면 육신이 죽으면 영원한 이별이 된다.
그러나, 마음의 근본 자리와 법으로 맺은 인연 관계는 영원 할 수 있다.
육신은 태울 수 있고 죽일 수 있지만, 마음과 인연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나의 마음 안에 상대의 마음과 인연이 녹아져 있다.
그리고, 죽음 직전의 마음 상태가 중요한 이유는
그 때의 마음이 원인이 되어(因)+그 원인에 걸맞는 환경에(緣) =
다시 태어 나기 때문이다.(果)
극락 또는 천국을 믿는다고 그 곳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의 마음이 극락 즉, 천국이 되어야 한다.
극락이란 어떤 곳인가?
마음의 집착이 없고 자유로우며 늘 행복한 곳이다.
그러므로, 죽음 직전에 마음을 내려 놓고 쉴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지만 과거 또한, 현명하게 살았다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대개는 미련과 회한 그리고, 원망이 남지만
과정을 잘 살은 사람들은 특별히 그렇지 않다.
작성일 : 13-01-09 10:42
글쓴이 : 빤냐완따
(지난 가을, 경주 현곡면 구지산자락의 폐사지 '남사'.
고색찬연한 3층석탑 하나가 단풍속에 파묻혀 있었다.
남사리 석탑 지나자 마자 저만치 현불사가 보인다.
공양간엔 객승을 위해 따순밥 짓던
인제는 가고 없는 8순의 노보살님. 아래 글은 까페 '경주현불사'에서 )
현불사의 영원한 소녀 허보살님이 어제 저녁에 육신을 떠났습니다.
평생 절에서 부처님 공경하고 기도와 수행으로 한결 같았기에
마지막 모습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였는데 역시
보통 사람들 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잠깐 법문을 하니 말은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다만, 두 눈에 눈물 방울이 맺히더니 제가 떠난 뒤에 다음 생을 찾아 떠났습니다.
며칠 전에 찾아 갔을 때는 몸은 야위었지만 정신은 너무나 또렸하여
"자장면을 먹었으면 좋겠다."
"스님 공양 반찬은 무엇으로 드시냐 "등
선원 주변 지인들의 안부까지 일일이 물었습니다.
기회다 싶어 평생 공부한 숙제 검사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몇 가지를 질문 하였습니다.
스 님: 보살님 아쉬운 것은 없습니까?
허보살: 여한이 없어요.
스 님: 마음 속에 응어리는 없습니까?
허보살: 모두 놓아 버렸습니다.
스 님: 몸에 집착이 되지 않습니까?
허보살: 집착하지 않습니다.
스 님: (웃으면서) 가시면 잔치를 할까요? 천도재(49재)를 할까요?
허보살: (눈을 찡긋하면서) 천 도 재 ....(평소 천도재 지내는 것을 취미로 한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후회, 애착 그리고,
다음 생에 대한 불안,육신의 고통으로 아름답지 만은 않은 죽음을 맞이 합니다.하지만,
허보살님처럼 마지막을 아름답게 받아 들이는 분은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별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허전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먼저 가서 멋진 곳에 좋은 터 잡아 놓기를 바랍니다.그리고, 다시 또 만납시다.
추신:
형식은 천도재(49재)로 하되 내용은 잔치로 하겠음.덧붙여 말하자면,
이 육신을 가지고 나다 너다 구분하면 육신이 죽으면 영원한 이별이 된다.
그러나, 마음의 근본 자리와 법으로 맺은 인연 관계는 영원 할 수 있다.
육신은 태울 수 있고 죽일 수 있지만, 마음과 인연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나의 마음 안에 상대의 마음과 인연이 녹아져 있다.
그리고, 죽음 직전의 마음 상태가 중요한 이유는
그 때의 마음이 원인이 되어(因)+그 원인에 걸맞는 환경에(緣) =
다시 태어 나기 때문이다.(果)
극락 또는 천국을 믿는다고 그 곳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의 마음이 극락 즉, 천국이 되어야 한다.
극락이란 어떤 곳인가?
마음의 집착이 없고 자유로우며 늘 행복한 곳이다.
그러므로, 죽음 직전에 마음을 내려 놓고 쉴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지만 과거 또한, 현명하게 살았다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대개는 미련과 회한 그리고, 원망이 남지만
과정을 잘 살은 사람들은 특별히 그렇지 않다.